✏️모든 가치 전도의 시작, 청년 니체의 반시대적 선언문 (1/4)

2022. 10. 10. 22:29F. Nietzsche

 

《비극의 탄생》 초판본(1872) 표지, 결박에서 풀려난 프로메테우스

“지금 내 안에서 학문과 예술과 철학이 함께 자라고 있다. 분명 언젠가는 켄타우로스를 낳을 것이다.”

1870년 여름, 젊은 문헌학자 니체는 심중에 켄타우로스를 품고 알프스 벽지에서 〈디오니소스적 세계관〉을 집필하기 시작합니다. 아폴론과 디오니소스의 이름을 처음 불러내며 비극을 철학적으로 해석한 이 글은 《비극의 탄생》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이후 몇 편의 글과 강의록이 덧붙으면서 비로소 니체의 첫 번째 책이 완성되었습니다. 이런 집필 과정 탓에 《비극의 탄생》은 전개가 원활하지 않고 감정의 진폭이 크며, 난해한 문체, 부사의 남발, 감정의 고조에 따른 빠른 호흡이 뒤섞여 있습니다. 내용상으로는 디오니소스적인 것과 아폴론적인 것이라는 두 예술충동의 원리로 예술사를 새롭게 설명하려는 야망, 소크라테스주의 및 학문에 대한 문제적 시각, 바그너 음악극에 도취된 선동이 혼재된 불온서적입니다. “현시대"의 사상과 예술, 학문을 도발하는 반시대적 선언문이기도 합니다.

당대의 문헌학계가 보기에 이 책은 촉망받던 젊은 학자의 죽음이요, 바그너의 눈에는 필생의 과업을 선전하는 젊은 영웅의 등장이며, 훗날의 니체가 보기에는 거대한 문제를 새파란 나이에 때 이르게 풀어내고자 고투한 결과물입니다. 이 첫 저서는 니체의 생애를 결정적으로 뒤바꾼 운명이자, 니체라는 비극적 영웅을 세계의 무대에 출현시킨 디오니소스적 분출이었습니다.

《비극의 탄생》의 중심 주제를 “이론적 세계관과 비극적 세계관의 투쟁”으로 파악한다면, 책의 내용은 크게 다섯 단락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 첫 번째에 해당하는 1장~4장은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이라는 두 예술충동의 투쟁과 화해"를 다룹니다. 이 둘은 각각 ‘조형·영상·언어'와 ‘음악'을 충동하는 “예술가적 권력들"로서, 이 양자의 투쟁과 화해를 통해 서사시, 서정시, 비극 등의 예술장르가 탄생했습니다. 니체는 이 두 예술충동으로 ‘주관적/객관적'이라는 종래의 구태의연한 미학적 도식을 극복하고자 하며, ‘영상'과 ‘음악'의 관계를 드러내어 서사시, 서정시, 비극의 생성 원리를 해명하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그는 “디오니소스적인 것과 아폴론적인 것이 서로를 뒤쫓아 매번 새로운 탄생체를 낳고 서로를 강화시키면서 어떻게 헬라스적 본질을 장악했는지" 살핍니다. 고대 신화와 예술을 배경으로 한 이 첫째 주제는 다소 전문적이고 산만하게 전개되지만, 고대 예술의 생성사와 본질을 전혀 새로운 원리로 규명하겠다는 신선하고 파격적인 기획을 선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