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5. 28. 00:31ㆍL. Wittgenstein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비트겐슈타인은 오스트리아 군에 입대한다. 탈장으로 인해 군 면제 판정을 받았으나 지원한 것이었다. 대학교육을 받았고 공학적 지식이 있었으므로 장교가 되거나 후방에 배속되어 전차 수리 등의 임무를 부여받을 수 있었으나, 그는 최전방의 가장 위험한 지역이 배치되기를 강력히 원했고, 한때는 그러한 위치에서 목숨을 건 전투에 참여하기로 했다.
그는 최전방에 주둔할 때는 그곳에서 가장 위험한 위치인 관측소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요청했으며, 치열한 전투를 직접 경험하면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실존적 체험 속에서도 용감성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결국 그는 자원병의 위치에서 장교로 진급하게 되었고, 전투에서의 용기있는 행동으로 훈장을 받기로 했다. 그는 죽음에 몸을 던지는 자신의 체험을 일기장에 기록했을 뿐 아니라(비트겐슈타인 전쟁일기, 박술 역), 케임브리지에서 러셀과 논의했던 철학적 생각들을 나름대로 발전시켜서 틈틈히 적어나갔다.
군 경력은 1919년 8월 이탈리아 포로수용소에서 풀려남으로서 마감하게 된다. 약 10개월간의 포로 생활을 포함한 5년여의 참전 기간 동안 그는 훗날 <논리-철학 논고>로 알려지게 되는 책의 원고를 완성한다. 포로가 되기 전에 이미 완성되었지만 몬테 카지노의 수용소에서야 러셀과 프레게에게 그 사실을 알리고 복사본을 보낸다.
<논고>는 마치 잠언과도 같이 축약적이고 간결한 문체로 씌어진 100쪽이 채 안되는 분량의 책으로 철학적으로 어느정도 훈련이 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책에 씌어진 내용에 대한 사전 배경 없이는 이해가 무척 어렵게 씌어졌다. 책 자체가 설명이나 논증으로 이루어졌다기보다는 일종의 선언 혹은 단언의 형태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러셀도 <논고>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어려움를 겪었던 것이다.
<Wittgenstein, 박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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