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본성 | The Nature of Philosophy

2022. 10. 9. 22:08L. Wittgenstein


“철학”이란 단어는 자연 과학의 옆에 나란히 있는 것이 아니라, 위 또는 아래에 있는 것을 의미해야만한다.“ (TLP 4.111) 그닥 놀랍지 않지만 ”철학적 작업 속에서 발견되는 대부분의 명제와 물음은 거짓이 아니라 무의미한 것이다.“ 그러면 다음의 질문이 가능하다. 정말로 철학이란 것은 그것이 논리를 논할 때, 기껏해야 무의미(unsinnig)하거나 또는 의미가 결여된 것(sinnlos)인가? 철학자에게 남겨진 것은 (전통적이거나 심지어 혁명적인 것이라도) 미학과 인식론, 도덕적 명제를 의미 있는 방법으로 일반화/공식화할 수 없다는 것인가? 저 두 물음에 대한 답은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에 대한 묘사로 알 수 있다. : 철학은 이론 또는 교리가 아니라 활동이다. 철학적 활동이란 사고의 명료화, 나아가 언어 비판이다. 비트겐슈타인에 의해서 묘사된 철학자의 활동이란 논리적 분석을 하나의 도구로 제시하고 우리에게 가야할 길을 보여주므로서 전통적인 철학 의제에 대해 반응하고 응답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철학적 명제의 무의미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모든 명제는 가치가 같다.” (TLP 6.4) — 이는 책의 근본적인 생각일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명제의 가치를 측정하는 것은 “한계의 개념”과 “논리”를 통해 평가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처럼 명제의 가치에 대한 준엄한 선언, 제약과 같은, 이른바 긴장감 때문에 ⟪논고⟫는 더욱 강하게 느껴진다. ⟪논고⟫에서 사용된 개념, 그러니까 논리—철학적 개념과 한계는 세계에 속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명제로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언어/사고/세계는 모두 동형(isomorphic : isos[equals] + morphic[shape])이기 때문에, 언어를 통해 논리 자체를 말하려는 시도—“이것은 세계에 존재한다. 반면 이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것은 실패에 처해질 운명에 있다. 그리고 이것은 세계의 한계 밖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논고⟫의 서술은 자신의 한계에 봉착했다는 것이고, 무의미한 것이 되어버리는 위험에 서있다는 것을 말하려 한다.

이 긴장감에 대한 해법은 비트겐슈타인의 마지막 발언에서 발견되며 그는 사다리 은유를 통해 논고의 기능을 설명한다. 사다리는 “세상을 올바르게 보기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지만 그 이후 반드시 무의미함을 인식하게 될 것이고 이내 사다리를 던져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말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명료하게 말해야 하고,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선, 침묵해야한다.”는 것이다.

“나의 명제들은 다음과 같은 점에 의해서 하나의 주해 작업이다. 즉 나를 이해하는 사람은, 만일 그가 나의 명제들을 통해 — 나의 명제들을 딛고서 — 나의 명제들을 넘어 올라간다면, 그는 결국 나의 명제들을 무의미한 것으로 인식한다. (그는 말하자면 사다리를 딛고 올라간 후에는 그 사다리를 던져버려야 한다.) 그는 이 명제들을 극복해야한다. 그러면 그는 세계를 올바로 본다.“ (TLP 6.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