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The Wind Rises)

2019. 6. 6. 02:32Movie

"비행기 설계자를 꿈꾸는 소년“
#바람이분다 (2013)



1.

매일 밤 지붕에 올라가 안경을 벗어 접어둔 채 별을 바라본다. 호리코시 지로는 비행기 조종사를 꿈꾸는 일본의 소년이다. 그러나 근시인 시력 탓에 일찍 뜻을 접고 독어 공부와 잡지책을 읽으며 비행기 설계자로 꿈을 순항시킨다. 꿈에서 꿈을 바라본 경험이 있는가. 꿈-환상이란 것은 삶에서 절반 가까이 차지하는 현실이다. 내면의 환상을 구체화하여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다. 여기서 실존 인물인 이탈리아 비행기 엔지니어, 시카프로니 백작은 ‘일본의 소년’에게 나타나 용기와 충고를 해주는 잡지 속 동경하는 인물이다.

2차 세계 대전은 지로의 비행기 설계자의 꿈이 만개할 수 있는 모순적이고 비극적인 상황이다. 나라가 전쟁의 패배를 앞두고 가난이 덮치고 있는 상황이지만 지로가 움직이는 동기는 분명 순수한 것이었다. 뒷골목만 하더라도 굶주린 아이들이 수십 명이 넘던 시절이다. 귀가하던 중 자신보다 더 어린 갓난애기를 엎은 채 부모를 기다리는 남매를 보며 동정을 느끼고 카스테라를 선물하려하던, 혹시 자신의 이 동정이 해가 되지 않을까 집에 돌아와 걱정하던, 지로의 의식은 분명 전쟁과 꿈 사이의 간극을 느끼고 있었다.

2.

지로는 기차를 타고 가던 중 지진을 만난다. 발을 다친 사토미 나오코의 하녀를 도와준 것이 계기가 되어 사랑하게 되었는데, 지진의 혼란 속 잠깐의 만남 후 연락이 닿지 않았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지만 고원의 병원에서 우연히 그녀를 다시 만났고 결혼을 약속한다. 그러나 그녀는 결핵으로 인하여 죽음을 앞둔 상황이었고 결말은 사실상 내정되어 있음이나 다름이 없었다.

비행기를 설계하느라 도쿄에 머물지만 그녀는 회복을 위해 산속 요양 병원에 지내게 된다. 그녀의 상태가 위급하다는 연락을 받고 망설임 없이 기차를 끊어 돌아온다. 나오코는 피를 토하지만 항상 그의 앞에서는 화장을 하고 누워있다.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회복 후 결혼을 약속했던 것을 무마하면서까지 구로가와 부부의 도움을 받아 작은 결혼식을 치룬다. 얼마 후 그녀는 세상을 떠났지만 지로의 꿈에 밝은 원피스를 입고 나와 삶의 의지를 북돋아주며 이별을 전한다.


“비록 볼 수 없지만 바람이라면 사랑하는 그녀에게 닿을 수 있지 않을까? 그녀에게 전해주오.“

누가 바람을 보았을까요?

저도 당신도 보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나뭇잎이 흔들릴 때 바람이 지나갑니다.

바람이여, 날개를 흔들고 당신에게 불어가기를.

- 호리코시 지로의 종이 비행기 장면. <크리스티나 로세티의 누가 바람을 보았을까?>

3.

영화를 감상한 이들은 이것을 “전범 미화”라는 논리로 비판이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의 공학적 설계자의 꿈 또한 지로의 고민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실제로 공학적 지식의 축적은 전쟁의 편익을 받을 때 만개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다. 더구나, 그 성공은 민간인과 군의 희생으로 평가받는다. 일부는 전쟁의 목적에 활용당하지 않기 위해 기술자들은 일체의 움직임을 강요받지 않을 움직임을 실제로 취하기도 하지만 이것은 나이브한 생각이다. 모든 비행기가 전시에 활용되듯, 전쟁이 발생되는 시점부터 모든 기기는 전시용으로 탈바꿈된다. 우리는 이런 죄로부터 자유롭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어쨌거나 이 영화는 전쟁이 가로막는 개인의 꿈에 대한 단상이 포함되어 있다. 꿈(Dream)과 꿈(Goal) 사이 반전적이고 대조되며 아름다운 색체가 더욱 좌절스러운 현실을 묘사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야오의 언급처럼, 바람은 단순히 산뜻한 바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시대의 바람, 고난의 바람, 심지어 방사선과 독을 포함한 바람도 존재한다. 그러나 그러한 바람의 발생은 생명의 증거다. 따라서 세계는 살아있다. 그 고단한 세계 속 우리는 ‘살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한 고민이 녹아든 것이 이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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