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3. 12. 04:15ㆍMovie
The Batman | 사라져 버린 배트맨의 정체성
1. 미국 할리우드 시장은 계급주의의 망령이 지배하고 있다. 최근 디즈니를 중심으로 원작에서 백인이었던 인어공주가 흑인 배우로, 피터팬의 팅커벨도 흑인 배우로 캐스팅 되면서 의문을 나았다. 10년 만에 많은 이목을 끌며 개봉된 『The Batman』도 이를 피할 수 없었다.
과거 개리 올드만이 연기했던 짐 고든 형사가 흑인으로, 흑인 캣우먼과 흑인 고담 시장이 되는 등 블랙 워싱(Black Washing)되었다. 이들은 하나같이 모두 선하게 묘사되었으며 갑자기 캣우먼이 ‘백인 엘리트 특권층’을 언급하며 비판하는 장면을 포함시킨 것이 그렇다. 또한, 한 장면에서 악당인 리들러에 따르면 이런 특권을 누리며 살아왔기 때문에 브루스 웨인의 부모가 살해당했을 때 분노할 권리가 없다고 말하는 장면이 존재한다.
이 내용의 바탕에는 하나의 이데올로기를 포함한다. 백인은 때때로 자본가로서 사회적 특권층에 속하거나 부도덕한 인간으로 묘사되는 반면, 흑인은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고통받고 있는 선한 사회적 약자의 계층이라는 것이다. 이는 정말 어색한 장면이었다.
원작을 따른 놀란 감독의 배트맨 시리즈를 보면 자선 사업을 위한 모임이나 기부를 통해 이미지 관리에 신경쓰는 것이 브루스 웨인이지만, 이번의 작품에서는 돈이 많지만 어떤 자선 사업도 하지 않으며 선한 일에는 관여도 하지 않고 방치하는 사람으로 묘사시켜버렸다. 그리고 배트맨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도 이를 숨기기 위해 브루스 웨인을 연기하지도 않으며, 단순히 우울한 표정을 유지하고 이 두 명의 역할을 구분짓지 않고 있다.
2. 배트맨의 활동이 고담에 도움이 되는 이유는 범죄와의 전쟁이라는 기본적 구도 때문이다. 배트맨이 악의 세력을 견제하지 않는다면 공권력이 작동하지 않고 돈에 매수당하여 부패해버릴 때까지 망가져버린 도시에 정의가 자리잡지 못한다는 상황인 것이다. 따라서 일종의 공포를 통해 범죄를 억제하여야하며 (놀란 시리즈에선) 종래에 자신의 공로를 포기하면서까지 헌법이 작동하는 체제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회복시키는 것이 목적인 것이다. 또한 희생을 통해 하나의 상징으로서 시민들에게 그 영감을 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영화는 배트맨이 왜 그런 활동을 하는 것인지 어떠한 이유도 설명하지 않고 있다. 예컨대, 배트맨과 리들러를 구별짓는 것은 배트맨은 악당을 표적삼는 것이고, 리들러는 무고한 사람들이 표적인 것이다.
그러면서, 배트맨은 사실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고 설명한다. 범죄자들과 싸울 것이 아니라 횃불을 들고 사람을 인도시키거나, 지미 카터와 함께 노숙자를 위한 시설을 짓는 것이 배트맨이 할 일이라는 것이다. 난 이를 보고 미국 리버럴들이 주장하는 공공 질서에 관한 치안적 예산을 삭감하자는 진영적인 논리를 확실히 인식할 수 있었다. 이는 배트맨이 추구하는 근본적인 정의에 대한 배신인 것이나 다름이 없다.
기본적 구도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변경되는 것이라면 불편하게 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영화는 맷 리브스 감독이 배트맨을 싫어하고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배트맨이 영웅으로 작동하는 기본적 원리‘를 해체시켜 버렸다. 맷 리브스의 더 배트맨이 다루는 이 문제들이 가볍다고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럼에도 배트맨의 정체성은 인종적 계급주의를 설명하기 위해 탄생된 캐릭터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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