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ege

2019. 6. 6. 02:30Philosophy

1. ‘분석철학’으로 합의된 것은 일관적인 원리와 엄격한 체계에 동의한 어떤 범주가 아니다. 분석철학의 내부는 다양한 의견 충돌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분석철학으로 표현하기에 충분한 통일성이 있다. 그것은 프레게다. 프레게 이후 사상가가 모두 그에게 동의하고 종속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분석철학을 조명해볼 때 가장 잘 이해될 수 있다. 그의 연구는 분석철학 사조에서 개별적인 사상가들에게 직접적으로나 또는 간접적으로나 영향을 미쳤다. 대표적으로 러셀, 비트겐슈타인, 카르납이 세간에 알려진 사상가이다.

“논리적 분석에 관한 모든 문제들에서 우리들은 주로 프레게의 은혜를 입었다.”

Russell, Whitehead (1910~ 1913)「Principia Mathematic

 

프레게는 주로 수학적 문제에 중대한 결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수를 지지하는 견고한 논리적 기초이다. 따라서 수에 대한 수학적 개념과 정리를 순수 논리적 기호로 재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순수 논리적 관념들로 도출될 수 있다는 것은 논리주의자 논제(Logicist Thesis)로 알려져있다. 논리주의자 논제는 수학 문제의 증명 절차를 설명하기 위해 명료하고 엄밀히 나타낸다. 이것을 위해 프레게는 특수한 기호를 스스로 고안해서 사용했다. (프레게는 스스로 고안한 기호 사용을 채택한 최초의 철학자가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수학 이전부터 사용해왔다.)

프레게의 생애 동안 저술한 책과 중요한 논문들은 ‘분석적’인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의 주요한 연구를 다룬 저서 – 「개념표기 : Begriffsschrift」,「산수의 기초들 : Die Grundlagen der Arithmetik」, 「산수의 근본 법칙들 : Grundgesetze der Arithmetik」-와 논문-「개념과 대상에 관하여 : Über Begriff und Gegenstand」, 「뜻과 지시체에 관하여 : Über Sinn und Bedeutung」 등에 잘 나타나있다.

2. 「개념표기」는 프레게의 초기 사상이 잘 드러난 것으로 평가받는다. 성과는 당시 중요하게 평가받지 못했지만 현대에 들어서 그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는 상태이며 현대 논리학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가졌다. 유일한 연역적 추리가 요구되는 수학은 논리적 엄밀성이 결여되어 있으므로 「개념표기」에서 확보가 시도되었다. 이러한 시도는 수학을 논리학의 영역으로 가져와, 수리 논리학이 수에 대한 체계의 확립을 도울 수 있도록 특별히 고안된 것이다.

프레게는 순수 논리학의 엄밀성과 명료성으로 수학의 기초 관념들과 정리를 재정립/재표현하려 노력하였다. 이를 위해 두 가지를 제안했다.

(1) 하나의 증명 내에서 언명들을 각각 서로 연결하는 것을 보장해주는 추리 규칙들과 모든 가정들과 전제들을 명시적으로 만든다.
(2) 일상적인 자연 언어의 어떠한 느슨함이나 모호성도 가지고 있지 않은 적절하면서도 특수하게 고안된 전문적인 기호 표기를 제공한다.
M.K. Munitz,「Contemporary Analytic Philosophy 」

프레게는 한 명제와 다른 명제 사이에 논리적 관계에 관심이 있었다. 반면 명제를 연상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심리적인 과정은 중요하게 다루지 않았다. 그는 산수가 견고하고 엄밀하며, 논리적 증명과 추론의 과정 속에서 나타나는 결론을 입증하는 ‘방법’을 찾으려 노력했다. 누구나 이 방법 속에서 건전성을 만날 수 있고 논리적 증명의 단계를 밝힐 수 있게 된다.

1에서 서술하였듯, 프레게는 수를 정초하기 위해서 특수한 기호를 고안했다. ‘보편 양화사’, ‘조건 양화사’, ‘동일성’ 등이 포함된다. 그 중 수학의 ‘함수’, ‘변항’과 함께 고전적 논리학의 논리적 개념으로 ‘술어’와 ‘주어’와의 유사성을 주목하였다. 원래 고전 논리학의 술어란 특정 속성이 주어에 종속되는 개념으로 알고 있다. 주어를 변항으로, 함수와 변항들의 조합은 진리값으로 지정할 수 있다. 고전 논리학의 요소는 이렇게 ‘변항’으로 비유해서 설명한다면 효율적인 이해를 도울 수 있다. “명제 내부의 구조를 분석하면서, 일반성의 개념을 표현하기 위해 양화사의 개념과 양화사가 그 범위를 속박하는 변수를 마음대로 사용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표현하였다.” 「개념표기」는 양화 개념을 최초로 사용하였다. 프레게의 이러한 사유를 따라가면 수학은 논리학의 체계로 나타난다. 그렇지만 논리적 기호 표기와 논리학 형식에 동조하였다고 해서 논리학의 완전한 부분적인 학문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이 다 끝난 후에 자신의 체계의 기초들 가운데 중요한 하나가 들리고 있다는 것이 과학적인 저자에게 발생할 수 있는 가장 불행한 일인 것 같다. (…) 불행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는 [똑같은] 어려움에 빠져 있는 동료들을 가지고 있는 것도 위안이 된다.”
Frege「Grundgesetze der Arithmetik」

러셀의 편지 한 통으로 프레게는 부록에 자신이 쌓아올린 체계의 내용이 문제가 있음을 시인한다. 논리주의자 논제가 최종적으로 실패하였지만 프레게의 연구는 고전 논리학에서 정체되었던 형식을 현대의 형식으로 탈바꿈 시키는데 기여하였다. (칸트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논리학의 모든 이치를 밝혔고 더 이상의 발전도 없다고 했다.) 프레게의 성과와 관심을 넘어서, 그의 연구는 다양한 것을 확장시켰고 “응용의 효용성과 적용 범위를 가지게되었다.”

3. 프레게는 1848년 11월 8일 독일 비스마르 출생이다. 그의 아버지는 여자 고등학교를 창립하였고 교장을 지냈다. 아버지 이후 어머니 또한 교장으로 지냈다. 프레게는 1869년에서 1871년 예나 대학을 재학하였고 괴팅겐 대학에도 등록하였다. 1873년 괴텡겐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다시 예나 대학으로 갔다. 그리고 45년 동안 교수로 재직하며 교수로서 모든 경력을 보냈다. 1925년 7월 26일 77세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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