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5. 19. 00:36ㆍWriting
내가 불평하고 지적한 비판이 얼마 지나지 않아, 수십번 나에게 돌아오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비판을 할 때에는 미래의 자신은 결코 그러지 않을 것처럼 비판한다. 미래의 자신이 없을 것처럼 비판한다. 이와 반대로 나의 기존 질서를 파괴할 용기를 가지고 내 속의 들보를 찾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사실 참된 '나'는 항상 내게 있지만 이를 마주하는 일은 매우 불편하고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오로지 자신만으로서 살아가는 사람의 삶은 무력하다.
이처럼 불안정한 내면을 벗어날 수 있고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초월적 정신 세계에 대한 갈망은 정신의 역사를 반영하는 철학에서 다양한 표현으로 쓰여왔다.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론, 헤겔의 변증법, 플라톤의 산파술 등이 있다. 3대 고백록이라고 꼽히는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톨스토이 『참회록』, 루소 『고백록』, 이 모든 시도들이 현재 자신의 세계관을 넘어 초월적 정신관을 얻기 위한 일종의 인간적 시도들이다. 그러나 우리가 가진 것이 인격, 즉 인간의 자격인 이상 불안정하고 쉽게 부패한다는 진실을 인정하는 순간 견고한 정신세계를 구축할 '가능성'을 가질 수 있다.
기독교에서는 이러한 작용과 견줄 수 있는 방법론이 있다. 그것은 회개를 통한 고백이다. 목 전체를 옭매는 타는 목마름과 강한 의지로 나오는 영혼적 구토다. 사실 회개란 우리가 알고 있는 여러 실천적 보편원칙에 입각하여 있다. '솔직하라.', '적어도 거짓을 말하지 말라.', '네 이웃에게 사랑을 행하라.' 등과 같은 것이다.
예컨대, 질투심에 친구를 진심으로 축하해주지 않거나, 누군가의 불행을 기원였다고 고백하는 것과 같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의 잘못을 솔직히 직면하고 고백한 것이다. 우리가 죄악을 고백하는 바로 그 순간, 비로소 과거의 자신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다. 교리적 측면에서 이러한 솔직한 고백이 가능하다는 대전제는 다음과 같다. '우리가 숨기려고 해도 (신은 전지전능하여) 감출 수 없다.', '외면하여도 그것은 어떠한 방법이든 징벌의 형태로 돌아올 것이며 이내 곪아 터진다.' (...) 전지전능한 재판장의 존재를 인정한다면 모든 죄를 고백할 수 밖에 없다는 말이다.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Matthew 7 : Be careful about Criticizing Others
남에게 '어떻게' 대접받고 싶은가? 불안의 결여, 결여를 없앨 감정적 모체. 무언가 성취를 하는 이유는 사랑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사랑으로 대접받길 원한다면 사랑으로 대접해주어야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실하고 성실한 사고의 인격을 추구할 수 있는 행동의 가능성을 열었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회개란 어떠한 세상적 시도보다 견고한 세계관을 구축하는 지름길이다.
#사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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