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0. 22. 20:44ㆍL. Wittgenstein
“내 작업은 논리의 기초에서 시작하여 세계의 본질까지 확장되었다.”
1차세계대전 참전은 비트겐슈타인의 일생에서 가장 결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수학기초론과 논리학에 국한되어 있던 그의 사유는 전쟁을 거치면서 형이상학, 윤리학, 미학 등을 아우르는 위대한 철학의 반열에 올라섰고, 그는 불멸의 철학서 《논리철학논고》의 저자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그가 참전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는 성장 과정에서 두 형의 자살을 목격했고, 철학자 오토 바이닝거의 사상과 자살에 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후 철학적 영역을 확립해가던 중 겪은 아버지의 죽음은 그에게 또 한 번 죽음의 문제를 상기시킵니다. 자살이 해답이 아니라고 느꼈던 그에게 삶을 완성하는 방법으로 전장에서의 죽음이라는 가능성이 떠올랐을 거라 추측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의 계기는 철학적 벗이자 스승이었던 버트런드 러셀과 에드워드 무어와의 결별입니다. 비트겐슈타인은 1913년 러셀과 자신이 윤리적, 미학적 판단에서 본질적 차이가 있다고 느끼며 결별을 선언했습니다. 이듬해에는 논리학을 연구하던 중 소위 ‘학문적인' 글을 쓰는 일을 불가능하다고 느껴 무어에게 자신의 생각을 받아적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 글을 대학에 제출해 석사학위를 받으려 했지만, 제목, 머리말, 목차, 주석 등을 갖추지 않은 기록물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답이 돌아옵니다. 삶의 심리적, 윤리적 구심점이었던 아버지를 잃었고, 자신을 이해해줄 친구도 남지 않았으며, 제도권 학계는 그를 위한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이처럼 정신적 파산 상태에 놓인 그는 포병대에 이등병으로 자원입대합니다.
동료 병사들과 원만하게 어울리지 못한 그에게 가장 중요한 대화 상대는 몇 권의 책과 일기장이었습니다. 그는 일기장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왼편에는 암호문으로 일상을 기록하고, 오른편에는 《논리철학논고》의 초고를 써나갑니다.
동료들과의 갈등이 극에 달한 1916년, 그는 톨스토이의 《복음서 해설》만을 가지고 자원해서 최전선으로 향합니다. 여기서 그는 후방과는 다른 수준의 실존적 공포를 느낍니다. 죽음에 직면하자 그는 역설적으로 생에 대한 새로운 의지가 자신 안에서 싹트는 것을 발견합니다. 여러 번 닥쳐온 생명의 위협을 무사히 넘긴 뒤, 신, 죽음, 삶의 목적, 종교, 유아론, 도덕 등 가장 심오한 철학적 주제에 대한 지적들이 한꺼번에 터져나오듯 집필됩니다. 그는 죽음의 공포를 대면하면서도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었습니다. 행복은 외적 조건과 무관한 영혼의 상태이며, 나의 통제를 벗어난 우연성의 세계는 행복과 아무 관련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철학에서 이론과 실존이 조우하여 종교적, 비의적인 인식을 향하는 보기 드문 지점을 발견합니다.
비트겐슈타인의 초기 철학관은 논리학에 대한 형식적 사유에서 출발해, 죽음의 경험에 이르러 비로소 실존적 층위와 결합됩니다. 이처럼 《논리철학논고》의 형성 과정은 고통받는 인간 비트겐슈타인이 논리철학자 비트겐슈타인과 만나 화해하는 과정과 일치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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