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비트겐슈타인의 불태우지 못한 일기(3/4)

2020. 10. 22. 20:43L. Wittgenstein

사진: 영화 〈비트겐슈타인〉 중에서

 

비트겐슈타인의 글을 이해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논리철학논고》의 모든 문장은 사실상 독립된 표현이며, 이 저술은 일체의 논증이나 설득도 없이, 전적으로 선언으로만 이루어진 신비로운 책입니다. 전통적 의미의 책이라는 매체는 철저하게 부정되며, 기존 철학서의 형식에 익숙한 독자의 접근을 거부합니다. 《전쟁일기》에서는 이런 문제가 더욱 심화됩니다. 그렇다면 이 철학자의 매력적이고 오만한 사유에 어떻게 접근하는 것이 올바른 것일까요?

한 가지 방식은 비트겐슈타인이 어떤 사유의 전통에서, 어떤 개념과 문제들을 가지고 철학했는지를 살펴보는 ‘이론적' 접근법입니다. 다른 방식으로는 2000년대에 등장한 새로운 해석 풍조인 ‘뉴 비트겐슈타인'이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비트겐슈타인의 삶과 철학 사이의 본질적인 관계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의 사유에 대한 이해 역시 단편적일 수밖에 없음을 전제로 합니다. 《전쟁일기》의 이중 집필 체계에서 우리는 삶의 영역과 철학의 차원이 병존하면서 ‘말할 수 있는 것'과 침묵 사이의 미세한 균형점을 향해 수렴하는 모습을 발견합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의 글쓰기 과정을 줄곧 ‘지적(bemerkung)’이라는 말로 묘사하곤 했습니다. 그에게 ‘지적'은 글쓰기의 최소 단위이자 사유의 원소였습니다. 여느 학문적 글쓰기와 달리 그의 작업 방식은 파편적이고 비선형적이었으며, 거의 충동적이었습니다. 4년동안 책의 기본 재료인 ‘지적들'을 확보한 다음 그는 중간 정리본을 만들었고, 이를 바탕으로 다시 최종본인 《논리철학논고》를 완성했습니다.

《전쟁일기》에서 그는 무질서할 정도의 자유로움을 보여 줍니다. 철학의 영역들을 횡단하고 또 방황하면서 문제들이 서로 어떻게 얽혀 있는지 파악합니다. 철학함에 있어 그는 서재에 앉아 있는 지리학자보다는 현장을 누비는 지도 제작자의 면모를 보여 줍니다. 철학적 진리는 정처 없이 방황한 자만이 얻을 수 있는 보상으로, 여기서 그는 언어와 세계의 관계, 논리의 본질에 관한 문제들 속을 헤매면서 얻은 작은 지도 조각들을 모아 둡니다. 《전쟁일기》의 독자는 《논리철학논고》의 “수정처럼 순수한" 개념들이 어떤 힘겨운 궤적을 통해 쟁취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